1월, 2026의 게시물 표시

[영화와 영성] 복수는 더 큰 악을 낳을 뿐 : 영화 <크루엘라>가 던지는 질문

이미지
  [영화와 영성] 복수는 더 큰 악을 낳을 뿐 : 영화 <크루엘라>가 던지는 질문 1. "당신이 사죄한다면, 용서해주겠어"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마음을 할퀴는 상처도 참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용서는 주님의 핵심 가르침이며, 예수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며 죽음 앞에서도 이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용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일곱 번은커녕 단 한 번도 어렵죠. 입으로는 용서를 말해도, 마음속엔 여전히 분노와 미움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흔히 용서에 조건을 붙이곤 합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죄한다면..." 2. 복수라는 이름의 달콤한 합리화 죄의식 없는 상대방을 보며 우리는 복수를 꿈꿉니다. 복수가 훨씬 후련하고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내가 당한 만큼 돌려줘야 상대도 반성할 것이다." "복수심은 참회를 이끌어내기 위한 간절한 갈구다." 이런 논리로 우리는 자신의 복수심을 정의로 포장하고 합리화하곤 합니다. 영화 **<크루엘라>**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3. 매혹적인 악녀, 크루엘라의 당당한 복수 영화 속 크루엘라(엠마 스톤 분)는 기존의 악당과는 다릅니다. 빼어난 미모와 천재적인 패션 감각을 지닌 그녀는 **'매력적인 악녀'**로 등장합니다. 망설임 없는 응징: 양모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 그녀는 친모를 향한 복수에도 거침이 없습니다. 악의 정당화: "나는 착한 크루엘라가 될 수 없다, 주님의 계획이 그렇다"고 외치며 더 강력하고 당당한 악녀의 길을 선택합니다. 시각적 쾌감: 화려한 연출과 유머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복수에 동조하고 쾌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영화는 그녀의 악이 '태생적'이라 말합니다. 세상이 그녀를 폭발하게 만들었기에, 더 이상 어둠...

[영화와 영성] ‘어머니’되기와 ‘나’로 살기, 선택일까요?_<로스트 도터>

이미지
  [영화와 영성] ‘어머니’되기와 ‘나’로 살기, 선택일까요?_<로스트 도터> 모성애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일까요?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어머니 역할을 다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고 인생일까요? 우리는 어머니란 존재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압니다. 그럼에도 그 사랑과 축복을 거부하려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무조건적 희생만을 강요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삶을 존중하지 않는 세상이 어머니의 존재를 점점 더 고통과 절망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진정한 내 삶을 찾기 위해 아이들로부터 도망치는 ‘레다’ **<로스트 도터>**의 주인공인 마흔일곱 살의 대학강사인 레다( 올리비아 콜맨 분)도 그랬습니다. 스물셋과 스물다섯 살의 두 딸이 헤어진 남편에게로 가버린 후 혼자 해변으로 여름휴가를 온 그녀가 회상하는 모성애는 마냥 숭고하고 아름답고 희생적이지 않습니다. 어린 딸을 두고 늘 도망쳐버리겠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그녀는 절대 그런 어머니를 닮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내 몸 안에 있는 생명체를 격렬하게 사랑’하고, 아이가 태어나자 헌신적으로 돌봅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나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자신과 다른 모습에 혐오하 고, 아이 기르기를 자신에게만 맡기는 남편의 이기심에 절망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진 정한 내 모습을 찾 지 못하는 것 같아서’‘나의 삶을 위해’어머니는 말로만 했던 ‘도망’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사랑과 고통의 미묘하고 대립되는 모성의 이중성을 레다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면서 자신을 해변에서 만난, 어린 딸을 돌보느라 지쳐가는 젊은 니나(다코다 존슨 분)에게 투영시킵니다. 니나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봅니다. 그래서 엄마에게만 매달리는 아이가 미워 인형을 훔치고, 니나에게 도망쳐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설득하지만 실패합니다. 그 순간 레다는 압니다. 자신의 선택이 어머니로서‘아이들을 잃어...

[영화와 영성] “평범한 이웃사촌, 당신은 내게 영웅입니다!”_<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미지
  [영화와 영성] “평범한 이웃사촌, 당신은 내게 영웅입니다!”_<나, 다니엘 블레이크> 자존감을 잃게 한다면 사랑과 복지가 아니라 차별과 상처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존감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그 마음의 무게는 누구나 같은데도 세상은 이따금 이를 무시하려 합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가난하고 늙고 병든 사람들의 자존심을 가볍고 하찮게 여깁니다. 도움, 자선, 나눔, 구제. 참 좋은 것이지요.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아름답고, 따뜻한 실천이지요. 그 실천이 개인이 아닌 사회공동체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그러나 만약 그 물질적 도움이 최소한 삶과 인간다움을 바라는 사람들을 구차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잃게 만든다면 사랑과 복지가 아니라 차별과 상처가 아닐까요. 연필시대 사람에게 인터넷을 강요하는 세상!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 분)는 “예”라고 말합니다. 심장병으로 40년 동안 해오던 목수 일을 중단해 질병수당을 받으러 발버둥치면서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수치심뿐이었으니까요. 정부가 고용한 파견업체 의료전문가와 심사관의 무성의한 태도, 문의전화 한통을 위해 무려 1시간48분을 기다리게 한 ARS, 복잡한 행정절차, 조금의 융통성도 배려도 없이 ‘연필시대의 사람’에게 인터넷을 강요하는 세상 앞에서 그는 좌절합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 분)는 어떻고요. 2년 동안 노숙자 쉼터에서의 생활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버스를 잘못 타 심사에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생활보조금 지급대상 제재대상 명단에 올라갈 위기에 처합니다. 항의해 보지만 “정시출석은 의무사항”“원칙이 우선”이라는 냉랭한 말만 듣습니다. 영국만 이럴까요. 사람은 자존감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떠들며 온갖 복지와 사회보장을 만들어 놓으면 뭐합니까. 시혜자로 착각하는 오만한 공무원들과 편의주의 시스템이란 높은 벽이 가로막고서는 사람들을 힘들고 구차하...

[영화와 영성]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작은 아씨들>이 주는 위로

이미지
  [영화와 영성]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작은 아씨들>이 주는 위로 “인생이 불만족스러우면 너희가 받은 축복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라.” 툭하면 ‘우리한테 이게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리가 저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불평하는 아이들이 한 노파를 찾아가 행복해질 수 있는 주문을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노파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인생이 불만족스러우면 너희가 받은 축복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라.” 아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노파의 입을 빌은 어머니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아버지가 친구의 어려움을 돕다 재산을 잃어 가난해진 ‘작은 아씨들’에게 마치 부인은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 엇인지, 행복한 삶이 어떤 건지 가르쳐 줍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감사하는 마음은 자 존심을 이기는 법이란다.” 🌿 고난을 성장으로 바꾸는 힘 어린 시절 동화로도 읽었을,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  <작은 아씨들>  속의 네 자매는 이런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면서 자신들의 재능과 꿈을 하나씩 이뤄갑니다. 억지스럽지도 않고, 지나치게 순종적이거나 숙명적이지도 않습니다. 그 과정이 유쾌하고, 아름답고, 뭉클합니다. 참기 힘든 아픔도 있습니다. 1860년대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작은 마을 콩코드에 사는 ‘작은 아씨들’은 **순례자놀이(천로역정)**를 하듯 각자의 짐을 지고, 선함과 행복을 향한 갈망을 길잡이 삼아, 고난과 실수를 극복하면서, 용기를 잃지 않고 한걸음씩 나아갑니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웃음과 눈물, 존경과 사랑, 믿음과 나눔이 평화에 이르는 여정이며 곧 성장입니다. 👩‍👧‍👧 진정한 주인공, 어머니 '마치 부인' <작은 아씨들>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딸들이 아닌 **어머니(마치 부인)**입니다. 그녀는 어린 딸들이 가졌으면 하는 모든 미덕을 먼저 갖춘 본보기입니다. 나눔의 실천:  가난하면서도 더 가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