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영성] 복수는 더 큰 악을 낳을 뿐 : 영화 <크루엘라>가 던지는 질문
[영화와 영성] 복수는 더 큰 악을 낳을 뿐 : 영화 <크루엘라>가 던지는 질문
1. "당신이 사죄한다면, 용서해주겠어"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마음을 할퀴는 상처도 참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용서는 주님의 핵심 가르침이며, 예수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며 죽음 앞에서도 이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용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일곱 번은커녕 단 한 번도 어렵죠. 입으로는 용서를 말해도, 마음속엔 여전히 분노와 미움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흔히 용서에 조건을 붙이곤 합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죄한다면..."
2. 복수라는 이름의 달콤한 합리화
죄의식 없는 상대방을 보며 우리는 복수를 꿈꿉니다. 복수가 훨씬 후련하고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내가 당한 만큼 돌려줘야 상대도 반성할 것이다."
"복수심은 참회를 이끌어내기 위한 간절한 갈구다."
이런 논리로 우리는 자신의 복수심을 정의로 포장하고 합리화하곤 합니다. 영화 **<크루엘라>**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3. 매혹적인 악녀, 크루엘라의 당당한 복수
영화 속 크루엘라(엠마 스톤 분)는 기존의 악당과는 다릅니다. 빼어난 미모와 천재적인 패션 감각을 지닌 그녀는 **'매력적인 악녀'**로 등장합니다.
망설임 없는 응징: 양모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 그녀는 친모를 향한 복수에도 거침이 없습니다.
악의 정당화: "나는 착한 크루엘라가 될 수 없다, 주님의 계획이 그렇다"고 외치며 더 강력하고 당당한 악녀의 길을 선택합니다.
시각적 쾌감: 화려한 연출과 유머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복수에 동조하고 쾌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영화는 그녀의 악이 '태생적'이라 말합니다. 세상이 그녀를 폭발하게 만들었기에, 더 이상 어둠 속에 숨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마치 악이 선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죠.
4. 정의로운 복수도 결국 '악'일 뿐입니다
사회적 상처가 원인이었다 할지라도, 악이 선이 될 수는 없습니다. > "정의로운 복수와 선을 위한 악도 결국 악이며, 이는 더 큰 악을 낳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선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계획 안에 "나는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예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복수의 쾌감은 일시적이지만, 그 끝에는 더 깊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 마치며: 에스텔라로 돌아올 그녀를 기다리며
다음 영화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내면의 상처를 복수가 아닌 용서와 치유로 씻어내는 '에스텔라'의 모습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심리학자 마이클 맥컬러프는 **"용서 역시 진화된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했습니다. 머리 색깔이 검게 변해버린 섬뜩한 악녀보다, 용서를 통해 진정한 평화를 찾은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 | 이대현 요나 (언론학 박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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